지난번에 이어서 역대 최악의 감독시리즈를 이어나갈려고 한다.(참고로 다음편은 두산 송일수 감독) 보통 엘지팬들에게 최악의 감독을 묻는다면 그 답은 하나로 이미 정해져있다. 그 사람이 바로 이순철 현 해설위원이다. LG로 한정하지 않고 전 구단 상대로 투표를 해보아도 항상 최악의 감독 3위안에 드는 감독들이 바로 백인천 감독과 이순철 감독이니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그럼 이순철 전 LG 감독에 대해서 알아보도록하자.

 

 

 

1. 선수시절

 

 

<선수시절의 이순철은 빠른 발에 장타력도 갖춘 호타준족이였다.>

 

 

 사실 이순철의 선수시절은 흠잡을 게 없을 정도로 훌룡하다. 내야수&외야수 골든글러브를 동시에 받았었으며 2010년에 선정한 한국프로야구 레전드10에 들었고 특히 라면수비 이병규의 원조격인 인물로 미리 포구지점을 포착해서 공을 잡는 장면은 당시 트레이드마크였다.

 주장으로 리더십도 상당했는지 당시 풍운아였던 임창룡의 염색된 머리를 검은색으로 다시 염색한 적도 있으며 외야에서 김일권과 같이 팔짱을 끼고 있으면 당시 모든 선수들이 긴장을 했을만큼 상당한 카리스마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선수시절 해태의 프렌차이즈로 잘 자리매김하다가 성적부진과 김응룡 감독과의 불화로 97년 방출되서 삼성에서 1년 뛴 뒤 은퇴를 하고만다. 레전드 인물치고는 말년이 상당히 초라한 편.

 

 

 

2. 코치시절

 

 

<삼성 코치시절의 모습>

 

  아무튼 그렇게 삼성에서 은퇴하고 3루 주루코치를 하고 있던 이순철 코치. 그러나 당시 삼성에서 우승을 위해서 김응룡 감독을 영입하게 되고 이에 관계가 껄끄럽던 이순철 코치는 LG 트윈스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당시 LG 프런트가 이광은 감독 등의 연세대 학벌로 교체중이였는데 아마 그 영향으로 영입되지 않은가 생각된다. 하지만 이후 고려대 위주로 다시 바뀌었음에도 살아남은 걸 보면 코치로도 꽤나 능력이 있던 걸로 보인다. 실제로 경기보는 눈 자체는 굉장히 좋은편이기도 했으며 선수들의 평가도 굉장히 좋은 편이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말이다.

 

 

 

 

3.순Fe라이징

 

 

<LG트윈스 감독시절의 모습. LG팬 한정으로 혐짤.>

 

 아무튼 그렇게 좋은 평가를 얻었던 이순철 코치는 이광환 감독이 프런트와의 불화로 사임하게 되면서 감독으로 영입되게 된다. 

 

사실 영입배경을 정확히 설명하자면 당시 일본에서 코치연수를 마친 선동렬 감독이 국내로 오면서 각 구단들은 선동렬 영입 경쟁에 뛰어들게 되는데 가장 먼저 두산이 영입하려 했으나 실패하게 되고 그 다음이 뛰어든 것이 바로 LG와 삼성. 당시 LG는 이광환 감독의 후임으로 선동렬을 내정하고 코치를 맡기려 했으나 결국 삼성과의 경쟁에서 패하게 되고 여기에 이광환 감독이 선수기용으로 프런트와 갈등이 일어나면서 결국 1년만에 해임되고 만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새 감독등으로는  LG 김용수 코치, 현대 김용달 코치등이 거론되기도 했으나 결국 그 친화력과 리더십을 높게사서 감독으로 선임된다.

 

하지만 이 선택은 LG를 암흑기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게 된다. 그의 행적을 살펴보면...

 

 

 

 <당시 LG 감독에 오르면서 남긴 목표. -_->

 

1. 성적실패

 

 

그가 LG에서 찍었던 성적은 6-6-8위(2006년은 중도사퇴였으나 그가 말아먹은 상태에서 나갔으므로)에 총 승률은 305경기 129승 170패 6무 승률 0.431로 상당히 처참한 편이다. 이시기는 LG 트윈스의 비밀번호 시작점이기도 하고(6668587667) 특히 2006년 꼴찌는 MBC 청룡-LG 트윈스에서 최초로 생긴 일. 

 

 

 

2. 선수들(+코치) 강제추방.

 2003년 당시 이광환 감독이 해임된 가장 큰 이유는 고참선수를 정리하려는 프런트와의 갈등 때문이였다. 하지만 이순철 감독은 부임하자 곧바로 프런트와 동조해서 선수들을 은퇴시키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당시 LG의 프렌차이즈자 투혼의 상징인 이상훈의 트레이드. 이상훈은 트레이드 거부를 위해서 이순철을 찾아가나 거부당하고 결국 SK로 강제 트레이드된다. 하지만 1년도 안되서 친정팀을 향해 공을 던질 수 없다며 빠른 은퇴를 하고만다. 이상훈의 트레이드 원인은 이상훈이 기타를 치면서 분위기를 해쳤다는 것인데 정작 이상훈은 벤치에서 기타를 친적이 없다며 반박한다. 여기에 덤으로 이상훈을 주면서 받아온 선수들은 이름도 없었던 무명선수였다.

 

 하지만 이상훈만으로는 모잘랐는지 94신인 삼인방인 서용빈과 유지현을 강제은퇴시키게 된다. 당시 군파동으로 인해서 입대를 했다가 복귀한 서용빈에게는 대놓고 1군에 자리없다고 2군에만 두었으며 유지현의 경우 기량이 떨어졌다면서 악평을 하게 되고 이는 유지현의 빠른 은퇴에 기여를 하게 된다. 참고로 유지현의 경우에는 은퇴 전에 한화에서 영입을 요청했을 정도로 기량이 있는 상태였으나 리빌딩이라는 명목하에 강제은퇴를 하고 만다.

 

 

 <김용수 감독의 따님이 인터넷에 남긴 글.>

 

 

여기에 곁다리로 당시 LG 트윈스 레전드이자 당시 투수코치인 김용수를 코치에서 내쫓게 된다. 코치선임이야 감독에게 권한이 있는 일이지만 해임과정이 껄끄럽지 못했으며(당시 김용수 코치의 자제분이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야구선배인 김용수를 '그 양반'이라고 표현하는 등 막장행동을 서슴없이 자행했으며 잠실야구장에 걸려있던 영구결번 번호가 보기 불편하다는 이유로 철거까지 시킨다.

 

 

 

3. 이상한 선수영입.

 선수영입 역시 상당히 못한 편. 90년대에는 OB의 특급마무리였으나 기아로 이동하면서 점점 먹튀화 조짐이 보였던 진필중을 마무리 투수가 없다는 명목하에 영입하게 된다. 이상훈을 왜 쫓아냈는지 이해가 안가는 부분. 결국 예상대로 진필중은 먹튀가 되면서 LG FA 잔혹사에 이름을 남긴다.

 

또한 당시, LG에서 열심히 먹튀활동(?)을 하던 홍현우의 요청하에 기아와 트레이드를 하게 된다. 당시 상황을 보면 홍현우의 FA계약은 이미 끝나있는 상태였으며 무엇보다 홍현우의 몸상태는 정상이 아니였기 때문에 굳이 트레이드를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후배의 연봉보존을 위해서인지 (당시 연봉감봉에는 제한이 있었다.) 결국 트레이드로 홍현우를 보내게 된다. 그리고 정작 트레이드를 왜 했냐는 묻는 질문에는 "2군에 던질투수가 없어서"라는 명언을 남긴다. 이 트레이드로 건너간 체구작은 외야수는 국대 1번타자가 되는데 그 선수가 바로 이용규이다.

 

 

* 곁다리로 설명하면 당시 LG에서는 오태근,이용규,이대형 3명 중 1명을 제시했고 그 중 기아에서 이용규를 선택했다고 한다. 흔히 이용규가 이대형에게 밀렸다는 속설은 잘못된 말. 

 

 

 

 

그뿐만 아니라 4번 우타자를 대신해서 기아에서 열심히 먹튀행위를 하던 마해영을 트레이드 해오게 된다. 하지만 정작 마해영은 광주구장보다 더 넓은잠실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처참한 성작을 내면서 그대로 먹튀짓을 행한다.

 

 

 

<오죽했으면 SK조차 당황했다는 픽. 물론 효과는 없었다.>

 

 

  또한 LG 프런트와의 갈등으로 인해서 SK로 떠나게 된 김재현의 보상선수로 안재만을 선택하는 어처구니 없는 선택을 한다. 당시 뽑을 수 있는 선수는 채병룡,윤길현 등 쓸만한 유망주가 많았으나 그저 SK의 전력을 약화시킨다는 명목하에 안재만을 선택한것. 참고로 안재만은 원래 LG 트윈스 선수였다. 하지만 SK는 삼성의 김태균을 영입하면서 이순철 감독의 전략은 대실패로 끝난다.

 

그 유명한 먹튀 용병 매니 아이바 역시 이 때 뽑혔다.

 

 

 

 

4. 대체선수의 육성실패.

 사실 노장선수를 정리하더라도 대체 선수가 있다면 그나마 욕을 덜 먹었겠지만 그마저도 실패했다. 당시 유망주였던 내야수 추승우에게 웨이트와 식단을 통해서 강제로 살찌우게 할려나 실패하게 되고 오히려 주루툴마저 잃어버리게 만들었으며 오거정으로 유명한 정의윤 역시 생각보다 성장시키지 못한다. 유지현을 강제은퇴시키면서까지 밀어주었던 박경수의 경우에도 오히려 유리몸으로 고생시키는 등 어린 유망주 육성에도 실패하게 된다.

 

 

 

 

5. 선수혹사.

 당시 LG 투수진은 선발,중간,마무리 모두 떨어지는 편이였는데 2005년부터는 성적에 대한 부담감이 커졌는지 무자비한 불펜투수들의 혹사가 이어졌고 투수등판 횟수만 무려 606회로 당시 전체 1위를 달성시키는 등 혹사를 자행한다. 특히, 당시 김성근 감독의 무자비한 혹사로 망가진 이동현의 재활이 끝나지도 않았음에도 "재활은 마운드에서"라는 희대의 명언을 남긴다. 이동현뿐만 아니라 장문석 역시 100이닝 넘게 굴리는 등 퍼지게 되고 위에서 언급한 마해영 트레이드 때 기아로 팔려가게 된다.

 

 

 

 

뿐만 아니라 당시 신참이던 우규민이 투구 중 타자가 친 공에 직격으로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투구를 지시시키는 등 비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박용택의 소녀어깨 역시 당시 충분한 재활없이 굴리면서 굳어지게 된 것.

 

 

 

 

4. 결론.

  아무튼 그렇게 처참한 성적과 성과를 내던 이순철 감독은 2006년 중도사임을 하게 된다. 이 때 대행감독이 바로 후에 롯데 자이언츠를 맡았던 양승호 감독. 그 후 유학을 갔다가 KBO 해설위원으로 복귀하게 된다. 경기보는 눈은 상당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해설의 거성으로 떠오르게 되었고 여기에 LG 트윈스의 부진이 7년간 더 이어지자 '이순철 명장론'이 대두되기도 했다.

 

이후 선동렬 감독의 요청에 따라서 기아의 수석코치로 돌아가게되나(이전에 1년동안 넥센 수석코치를 맡은 적이 있지만...) 역시나 이종범의 강제은퇴에 이어서 선수단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하게 되고 2년만에 짤리게 되었고 이순철 명장론 역시 폐기처분된다.

 

감독에게 있어서 선수단을 잡는 강한 통솔력은 중요하나 단지 그것이 억압되고 강제적인 것만 있어서는 안되고 사람에 대한 인화력역시 상당히 중요하다고 보는데 이 부분이 부족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해설위원으로는 뛰어나다고 보기 때문에 계속 해설자리에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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