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30년을 지나서 40년을 향해가고 있다. 그 사이 프로야구 구단은 6개에서 10개로 늘어났으며 관중수는 이미 700만명을 돌파하는 데 이른다. 그 사이 많은 선수들과 감독들이 탄생하였는데 가장 먼저 프로야구 최악의 감독에 대해서 시리즈로 말해보려고 한다. 그 중 가장 첫번째로 선정한 것이 롯데의 백인천 감독이다. 그럼 백인천 감독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1. 롯데자이언츠 이전.

 사실 화려한 선수시절이 있었으나 감독시절에 대해서만 말해보려고한다. 먼저 당시 일본에서 준수하게 활약하던 백인천은 만 40세에 나이에 전후후무한 선수겸 감독으로 취임하게 된다. 사실 프로야구 초창기에는 코치스탭에 대한 중요성을 못느꼈기 때문에 코칭스태프가 상당히 적은 편이였는데 MBC 청룡 역시 그러한 케이스로 백인천을 영입했다. 하지만 백인천은 야구인 중에서도 상당히 젊은 축에 속해있었고 그 때문에 감독보다 나이가 많은 코치진을 제대로 넣을 수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이재환과 유백만등 백인천과 동갑인 실업코치들밖에 영입할 수 없었다.

 

 

 

 

<원년시절 괴물성적을 냈던 감독 겸 선수. 백인천>

 

 

 

일본시절과 한국시절의 수준 차 때문인지 40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무려 4할을 찍는 저력을 보여준다. 가끔 이 기록이 감독의 권한을 이용했다고 비판한다는데 80경기중에 71경기를 출전했고 빠진경기도 심판에 의한 징계였지 일부러 빠진건 아니였다. 이런 화려한 선수기록과는 달리 감독직은 영 시원찮은 편으로 코치 이재만과 여러번 충돌하였으며 백인천을 믿고 코치 2명 모두 투수코치로 뽑았던데다 박철순을 포기하고 뽑은 김재박, 이해창이 합류하지 못한 MBC 청룡은 좋은 성과를 올리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그는 다음 해 사임하고 삼미로 이동했으나 도중 간통죄로 인하여 결국 선수시절을 마감하게 된다.

 

아무튼 이 시절은 화려한 선수기록&미숙한 감독기록이 공존했다.

 

아무튼 그렇게 골프사업을 하면서 야구와 떨어져지낸 백인천. 그러던 중 당시 6년 연속 포스트 진출 실패라는 대기록을 세운 MBC 청룡에 부임하게 된다. 당시, MBC 청룡은 직전 해에 정상흠의 항명파동으로 인해서 배성서 감독이 짤리는 등 혼란속이였으며 그러던 중 이 MBC 청룡은 럭키금성에 야구단을 매각하게 된다. 그렇게 MBC 청룡의 마지막 감독이자 LG 트윈스 초대 감독이 된 백인천.

 

 

당시 LG 트윈스는 시즌 전까지만 해도 상황이 좋지 못했다. 주전으로 예상되었던 이광은과 김건우의 이탈등과 김재박의 노쇠화 등은 암울했고 그에 걸맞게 초반에는 OB와  꼴찌를 앞다툴정도였다. 하지만 김태원-김용수-정삼흠 투수진이 각성하고 여기에 신입 김동수 등의 활약으로 결국 해태, 빙그레를 꺾고 첫 정규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한국시리즈에서 역시 빙그레와 해태를 꺾고 올라온 삼성을 가볍게 셧아웃시켜버리면서 구단 최초의 한국시리즈 우승도 가져다준다.

 

 

 

<선수들에게 행가래를 받는 백인천 전 LG 감독>

 

 

하지만 이후 구단과 계약문제로 틀어진데다 주요 선수들의 부상으로 인해서 시즌 6위로 떨어지게 되고 결국 사임하고 팀을 떠나게 된다. 아무튼 우승감독답게 다른 구단의 러브콜이 있었고 1996년 삼성라이온즈의 감독으로 취임하게 된다.

 

 

당시 삼성라이온즈는 전해에 5-5의 성적을 찍는 자칭 암흑기를 찍는 상태였다. 그렇기에 백인천의 첫해는 6위라는 부족한 성적을 찍었으나 워낙 당시 라인업이 막장이였던데다 리빌딩도 차곡차곡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쁜평가를 받지는 않는다. 특히, 이승엽,정경배,최익성,김태균 등 어린선수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하면서 리빌딩을 성공시킨 것은 높이 평가받는편. 1997년에는 이 리빌딩을 보답하듯이 이승엽의 활약으로 성적을 찍기시작하나 원래부터 있던 건강문제로 병원에 실려가는 등 감독직 수행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결국 시즌이 끝나고 건강문제로 사임한다.

 

 

2. 롯데자이언츠 시절.

 아무튼 그렇게 건강문제를 해결하고 인스트럭터로 활동 중이던 백인천. 그런 백인천을 롯데 자이언츠는 감독으로 선임한다. 당시 롯데의 경우 2001년 김명성 감독이 사망한 후 급격하게 무너지며 8위를 찍었으며(말이 8위이지 사실 2001년 포스트시즌 경쟁은 상당히 치열했다. 4위인 한화와 8위인 롯데와의 차이가 단 2경기.)  이후 2002년 우용득 감독이 대행에서 정식으로 승격하였으나 김민재의 이적과 호세의 영입 실패 등으로 인해 팀 분위기는 막장이였다.  결국 초보 우용득 감독은 시즌 도중 사임했고 그 자리를 백인천이 맡게 된다. 그리고 시작하자마자 시즌포기와 리빌딩을 선언한다. 그리고 그에 걸맞게 롯데자이언츠는 2002년 35승 1무 97패, 승률 0.265라는 역대 뒤에서 3번째라는 성적을 기록하게 된다. 사실 이 롯데보다 뒤에 있는 것이 사실상 승수셔틀이였던 원년의 삼미와 선수단을 전부 팔아먹었던 99년 쌍방울이였으니 정상구단 중에서는 꼴찌를 한셈 이다.

 

 

3. 막장행각 정리

 

 

1) 막장성적.

 백인천 감독의 롯데 자이언츠 2년 성적은 총 163전 41승 119패 3무 승률 .256이다. 당연히 롯데 자이언츠 역사상 가장 뒤에 있는 성적이며 16연패는를 하는 등 전력을 감안해서라도 실드치기 힘들었다. 현재 MBC 해설위원인 허구연이 꼴찌 청보 핀토스를 이끌었을 때 승률이 15승 2무 40패. 승률 0.273이였으니 백인천의 총 승률이 어느정도인지 감이오는지 알 수 있다.

 

 

 

<혼자서 앞자리가 다른 숫자에서는 백인천 감독.>

 

 

 

2) 막장트레이드.

 일단 가장 먼저 전해인 2001년에 타율 3할에 장타율 5할을 치던 조경환을 트레이드시켜버리는 뻘짓을 저지른다. 당시 롯데는 타선이나 투수나 전부 막장이였는데 그나마 조경환은 우타거포의 자질이 있는 타자였으나 타격폼이 마음에 안든다며 조경환,매기=윤재국,박남섭,에르난데스로 트레이드 시켜는 막장짓을 저지른다. 심지어 데리고 온 에르난데스는 부상으로 경기에 제대로 출전하지도 못했다. (SK의 외국인 교체편법으로 신생팀 3명 보유였기 때문에 매기를 받으면서 에르난데스를 보낸 것)롯데가 뒷돈을 받지 않았냐는 말이 당시에도 나올정도였다. 심지어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손민한,이대호,문동환 등을 트레이드 하려고 했다는 말도 있었다. 후에 받아왔던 박남섭이 그나마 박준서로 개명해서 활약해줬으니 망정이지...

 

 

 

 

 

 

 

 

 

3) 외국인용병

 일본에서 활약했던 경험인지 스카우터 대신 본인이 직접 외국인 선수를 데리고온다. 사실 2002년 본인 스스로 외국인 선수가 필요없다고 선언하며 용병들을 전부 내쳤으나 처참한 성적을 기록하자 결국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기로 결정한 것. 롯데의 경우 당시 검은갈매기 호세가 영입대상으로 고려되었으나 사생활, 계약문제등으로 결국 포기하게 되었고 투수와 타자 1명씩 보강하기로한다. 그렇게 데려온 것이 바로 모리 가즈마와 보이 로드리게스를 데려온다. 하지만 모리 가즈마는 시즌 도 전에 퇴출당하고 보이 로드리게스는 0타점의 활약으로 퇴출당한다. 후에 대타로 들어온 것이 바로 이시온이라 불렸던 마리오 엔카나르시온.

 

 

 

 

<백인천 감독이 데리고 온 모리 가즈마. 백인천의 지인의 자제분을 데려왔다는 소문이 있기도 했다.>

 

 

 

<보이 로드리게스. 준수한 타율은 커녕 0타점에 1할대의 타격으로 7경기만에 퇴출당한다.>

 

 

 

4) 선수개조

 삼성 리빌딩 덕분에 자신감이 붙은 건지 선수들을 과감하게 개조시키기에 이른다. 특이한 타격폼으로 유명한 박정태의 경우 타격폼이 고쳐지지 않자 2군에 박아두기도 했으며 당시 체구에 살이 있던 이대호의 살을 빼기 위해서 오리걸음을 강제로 시켜서 이대호의 무릎을 아작내는데 일조를 하기도 했다. 또 유망주였던 김주찬을 거포로 만들기 위해서 역시 개조했다가 전 해 3할을 치며 신인왕 후보로도 올랐던 김주찬은 2002년 2할대, 2003년 1할대의 타율을 기록한다. 타선 전체로봐도 당시 롯데 타선의 경우 Ctrl+c, Ctrl+v를 연상시킬정도로 획일화 된 타격폼을 보여주는 등 타선의 문제가 심각한 편이였다.

 

 

 

<당시 감독님의 특명으로 살을 빼라고 했다가 무릎이 아작난 이대호.>

 

 

 

투수진을 보더라도 당시 임재철을 보내고 데리고온 이명호를 단지 어깨가 좋다는 이유로 외야수에서 강제로 투수전향시켰다가 부상을 입게 되었으며 고효준 역시 투구폼을 보고 악평을 한 경력이 있다.(후에 고효준은 건강문제로 롯데에서 방출당하고 SK에서 재기에 성공한다.)

 

 

 

<좌완사이드암으로 개조된 이명호. 결국 실적은 못냈으며 타자로 복귀후에도 부진하자 방출당한다.>

 

 

 

 

 

 

5) 자질자체의 의심

 당시, 롯데자이언츠 갈매기 마당에서 백인천 감독의 퇴출운동이 일어나게 된 계기이기도 한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 백인천의 경우 골프를 상당히 좋아했던데다(원래 야구선수들 중에 골프를 좋아하는 선수들은 많다.) 백인천의 아들이 골프선수였기 때문인지 야구보다는 골프에 관심이 많은상태였고 기자들과의 대담에서도 야구보다 골프이야기를 많이 할 정도였다. 결국 이 사실이 롯데 자이언츠 팬덤에 알려지면서 대규모 퇴출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백인천 감독의 골프실력??>

 

 

 

사실 골프이야기뿐만 아니라 자기 팀 선수의 이름도 제대로 몰라서 호명조차 제대로 못했으며 벤치에서 조는 장면까지 목격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2군으로 보낸 선수를 대타로 기용했다는 무용담(?)도 전해진다.

 

 

 

6) 언플

<감독을 믿고 기달려달라는 백인천. 음 맞는 말이긴 한데...>

 

 

 

 

<이대호는 반대로 좋은 인터뷰를 남기면서 훈훈하게 끝났다.>

 

 

 

 

 

<세대차때문에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곁다리로 종종 롯데팬들의 분통질 터지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아무튼 개인적인 의견을 첨가하자면 아무리 그 뒤에 여러명의 감독이 나타났더라도 롯데시절 백인천 감독을 이기기는 힘들지 않을까한다. 보통 다른 감독들은 이상한 작전과 구성능력으로 욕을 먹는 다면 롯데시절 백인천 감독은 심지어 그런 것 조차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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